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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1:58


페르낭 크노프의 잔느 키퍼의 초상, 오늘밤 내 눈길을 끈 그림


왼손으로 옷을 꾹 누른 모습이 뭔가에 의지하고 싶은 불안한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 같다. 


난 이렇게 훌쩍 커버렸지만 나도 가끔은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만은 저 아이와 같다. 


앞으로 기대고 싶을땐 저 아이처럼 옷을 꾹 눌러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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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0:47

빅토리아 시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여자들은 정숙하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림을 보는 재미중 하나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는것...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 자신도 여자면서 여성인권 신장 운동하는 사람을 정신나갔다하고 

여자에게는 정숙, 순종이라는 가치를 강요하며 남녀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은 또 잘 이해가 안감...


그리고 경제적 황금기이자 여성에게 정숙을 강조하던 이 시대에 자살률은 높았으며 매춘은 더 만연... 

아마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의 부작용 때문 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영국에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는데 trigger 역할을 한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프랑스에서는 전쟁으로 여자들이 가족의 생계를 이어야하면서 여자들이 사회로 진출해야하는 경우가 생겼고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점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지만 시민혁명에서 여성의 인권을 더 높이려는 노력은 실패...


남자 여자 같은 사람으로서 동일한 인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나가는 것은 정해져 있는 일인데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일을 앞당기거나 늦추냐는 것, 


김정운 교수는 독일이 통일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동독의 여행 자유화' 라고 이야기한게 생각난다. 


동독 정부는 국민들에게 여행의 자유를 주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언제부터'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동독 사람들은 실질적 여행의 자유가 없었다고한다. 


그리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법령(?)을 발표하면서 여행의 자유를 주겠다고 발표했는데 외신 기자가 별 생각없이? 언제부터 가능하냐고 질문을 했고 법령 문구를 다시 읽어보고 서류를 뒤적이더니 (서류에는 언제라고 표시가 안되어있네, 그냥) 오늘부터 가능하다고 한마디를 해버렸다. 


김정운교수는 이 사건을 두고 아마도 이 사람이 어제 술을 마시고 술이 안 깨서 실수 한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이 뉴스를 들은 동독 시민들은 너도나도 서독으로 떠난다. 동독 국경수비대가 막아 서지만 "당신 어제 새로운 법 발표 되는 거 못들었냐, 오늘부터 여행 자유다" 고 말하며 사람들이 서독으로 떠난다고...


동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독일의 통일은 언젠간 이루어질 것이었는데 '오늘부터 가능하다'라고 말한 실수가 그 통일을 앞당긴 trigger 였다고... 


토요일 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그림을 보다 'trigger'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삶에도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내는 trigger 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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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21:56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중 한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고 다른 한 곳은 샹젤리제 거리... 

비가 부슬부슬 오는날 샹젤리제 거리 카페에 앉아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바로크 양식 건물들과 끝없이 일자로 펼쳐진 길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리고 지나가는 관광객 구경하는 재미도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가 탄생하게된 배경은, 

1800년대 중반 파리 오스만 시장이 당시 지저분했던 파리를 도시화 하기위해
빈민가를 철거하자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터전을 읽게되어 시위를하는데
잡으려면 골목으로 숨어버리는 게릴라 시위를 하자 

시위를 하다가 도망갈 수 없게 길을 일 직선으로 아주 길게 만들게 된 것... 


그리고 백년이 지나 수 많은 관광객들은 낭만적인 곳이다라며 그 거리를 거닌다... ^^ 

우리의 삶도 잔인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 낭만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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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2 10:44
서양의 사실주의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렸다면 동양의 사실주의는 관념적 사실주의라하여 대상에서 느껴지는 '기' 나 '생명력'을 그렸다. 그래서 동양의 사실주의 그림에는 그림자가 없다 - 2/22일 명작스캔들 중 -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기로는 '본질'을 바라보는 동양/서양 철학의 차이점이 동양은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본질이라고 했고 서양에선 추상적으로 사유/인식되는 것을 본질이라 했는데...그럼 서양의 사실주의는 기존의 추상적 서양철학에 반대하는 의미도 있었던던가?  궁금하네 ! 

일요일 아침 명작스캔들보다 눈앞에 아이패드가 있길래 블로그에 써봄 

+ 쉽게 생각하면 사실주의는 추상의 반대이긴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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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21:34

작년에 김정운 교수님 강의내용 적어두고 너무 좋아서 가끔 읽어보는 글인데 블로그에도 올려 공유.

<김정운교수, 행복을위한 소통> 


1.만져라

발생학적으로 뇌로가는 세포와 피부로가는 세포가 같다

어린아이는 뇌로 생각하는게 아니고 피부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 계속 만져줘라 그래야 머리가 좋아진다

따뜻한 피부 접촉이 중요하다


어려운일 있으면 안아주고 만져준다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으면 스스로나를 만진다

불안하면 팔짱을 끼듯

부딪히면 손으로 만진다 왜? 그러면 덜아프니까

손, 입술, 혀 -> 뇌가 가장 신경 많이쓰는 순서

손으로 만지려는 이유는 뇌로 느끼고 싶어서다

누군가를 만지면서 나의 존재를 느낀다


할머니들은 손주, 바느질, 음식 등을 하며 만질대상이 많다 그래서 혼자 남게되어도 오래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르다.

치매예방을 위해 고스톱을 치라는게 손의 감각을 통해 뇌를 활성화시키는 것

소통이 안되는 것은 터치의 결핍이다


2.정서공유


같은 행동을하면 같은 느낌이온다

e.x) 하이파이브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

선 반응 후해석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라

행동을크게하라(말은 10% 표정 몸짓이 90%)그래서 유머감각이 있는사람은 말로 웃기기전
몸짓과 표정으로 웃길준비 다 해둔다. 
 
똑 같은 이야기를 해도 누가하면 웃기고 또 그렇지않은 이유가 표정,몸짓으로 웃길 준비를 해두었느냐 못했느냐이다.


행동을 크게하는 이유도 정서 공유를 하고자 함이다. 

논리로만 설득하려고하면 안된다

정서공유 필요하다. 


정서공유 하지 못하면 비호감이된다

상대방의 정서 신호를 잡으려면 내 삶이 즐거워야한다

내가 즐거워야 공감능력이 생기고 성대방을 설득할 수있다.

즐거워야 소통할 수 있다 -> 잘 쉬어라, 내안의 나와 잘 이야기해주어라. 


아내한테 부모님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가서 누구한테 인정을 받겠냐... 잘한다고 부추겨줘라. 


3. 입장바꿔보기


4. 리추얼 - 반복된 행동이나 의미를 붙여야함.


행복은 논리나 문장이 아니다. 

사진처럼 행복한 그림이 떠올라야한다 -> 내가 의미 부여한 리추얼 (ex 커피냄새가 나는 집, 한가로운 곳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하라 (고급호텔에 있는 하얀 침대 시트커버, 호텔에 있는 부분 조명...)


자기만의 재미를 찾아라

- 독수리오형제 증후근 -> 조류오남매 증후군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 경제이야기등등 이야기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다 허상)

- 개미증후군 ->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만 행복한게 아니다. 


5.감탄하라 -> 가장 중요하다. 


인간은 감탄하고 감탄받고 싶어서 산다. 엄마가 나를 보고 감탄을해서 내가 인간이 되었다. 

엄마의 감탄을 먹고 자람. 

왜 산에가나, 왜 여행을 가나, 왜 음악을 작곡하나, 

고속으로 근대화를 하다보니 감탄사를 잃어버림, 삶의 재미를 잃어버림.

칸트 미학의 핵심 -> 압도적인 감탄 그것을 위해 산다.  



P.S 난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한 식구가 모여서 한 번은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다음은 내가 밥을 사고 그 다음은 동생이 그리고 아버지가 밥을 사주시고...이렇게 한 식구가 밥을 같이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오랫동안 혼자서 자취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부모님과 동생과 모여서 같이 밥먹는 시간이 참 행복...그래서 난 누가 행복이 머냐고 물으면 동생이랑 서로 번갈아 가면서 부모님 밥사드리고
같이 밥먹는 시간이 행복이라고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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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00:05
요즘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은 중국어 공부이다.

오래전부터 중국어를 배워야지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중국어를 공부하게된 직접적인 유인은 '미국이 파산하는 날' 이라는 다소 거친 제목의 책을 읽고 난뒤였다.(책의 내용은 경제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넘어간다는 것을 몇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10년 정도 흐르면 중국어가 정말 중요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 미루고 중국어를 배워보자는 결심을 했다.
 
군대 있을때 서울대 중국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형이 후임병으로 있었는데 "중국어를 공부하려면 학원을 다녀야해 나도 처음에 혼자 한 1년 공부하고선 학원을 갔는데 발음 교정을 못받다보니 발음이 엉망이어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했다"고 이야기해주던게 떠올랐다.

사실 나는 학원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녀본 학원이라고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한문학원 1년, 초등학교 5~6학년때 정철 영어학원, 중3~고1 여름방학까지 다닌 입시학원이 내가 32년동안 다녀본 학원의 전부였다. 난 그냥 또래 친구들이랑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같이 이야기 하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형의 혼자 중국어 발음을 잡을 수 없다는 조언이 떠올라 그리고 마침 회사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차이나로 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15년 만에 가게된 학원은 어떤 곳일까하는 기대감과 특유의 학원에 대한 반골기질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퇴근을 하고 저녁때 격일로 강남차이나로 박귀진 원장님 수업을 듣게되었는데 
첫 수업 느낌은 정말 와! 너무 재미있고 강의 철학이 내가 원하는 공부 방식이다 라는 느낌이었다.  

박귀진 원장 선생님은 첫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기가 태어나서 엄마로부터 말을 배우듯이 가르칠 것이다"라고
난 이 한마디에 오... 이 수업 재미있겠다 그래 한 번 아기가 되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선생님은 중문과 75학번이라고 하셧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은 것이 91년인가 92년이니 중국과 수교되기 15년 전에 전공을 중국어로 택한 것이다. 나 에겐 이 역시 너무 흥미로웠다. 당시 교역도 없는 중공이라고 불리는 공산주의 나라의 말을 공부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엄척난 도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은 발음이 멋진 베이징어를 배우고 싶은데 70년대에 우리나라에 북경에 가본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베이징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한다. 화교들은 대부분 산동지방에서 온 사람들 뿐이었고,
그래서 지도 교수님이 충남 공주 사범대학 앞에 가면 중국집이 있는데 거기 주인이 북경말을 한다고 알려주어 주말마다 그 당시 고속도로도 없는 꼬블꼬블 길을 버스를타고 서울에서 공주로 가서 북경어를 배우고 왔다고한다. 학부를 마치고 유학을 대만으로 가는데(당시 중국으로는 갈 수 없으니) 대만 역시 발음이 안 좋아서 지금까지 공부한 발음을 버릴까봐 고민을 하니 그 중국집을 하시는 선생님이 대만에서 베이징 출신 사람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고한다. 당시 성냥을 베이징에서만 사용하는 단어가 있으니 어디 터미널로 가서 신문파는 가판대에 가서 북경에서 성냥을 부르는 단어를 사용해서 '성냥' 있어요? 헀을때 알아 들으면 베이징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알려준 곳에 가서 10군데의 가판대를 돌아다니는데 다들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다가 갚자기 어느 가판대에선 사람이 밖으로 나오더니 반갑게 베이징에서 왔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친구가 되어 대만 유학중에도 베이징 발음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엇다고...

어렵게 공부를 해서인지 강의 할때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익히기를 원하는 열강을 하시는게 느껴진다.
수업도 오뚜기 수강증이라고해서 입문반 학생에겐 수강후 6개월 안에는 언제든지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어떻게든 학원에서 뭔가 얻어가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난 용산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군복무헀는데 주말에 대부분의 카투사들이 놀러 부대밖으로 나갈때 난 미군들한테 영어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주말내내 미군 룸메이트 옆에 붙어있었고 종종 조금은 비굴하게 영어를 배워야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10년전 군생활도 많이 생각났었다.

학원 수업시간에는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덮어두고 수업을한다. 
아기가 오직 청력으로 언어에 익숙해지며 엄마를 따라하듯 눈으로 보면 귀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선생님이 말 하는 단어나 문장을 크게 따라 읽으며 자연스럽게 익히는 수업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을펴고 익혔던 단어/문장을 책을 보고 정리한다. 

아마 보통 대부분의 중국어 수업 1교시에는 발음 기호를 배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은 소화를 못한다.
나도 회사내에서 중국어를 배울기회가 있었는데 이틀 동안 발음기호만 배우다가 더 이상 수업에 나가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이유는 일이 바뻐서 였는데 진짜 이유는 발음기호가 이해도 안 가고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발음기호 배우고 말배우나?
아무말도 못하는데 발음기호 먼저 배워서 머하나 ?

선생님 말대로 어느정도 말을 배운 다음에 네이티브가 아닌 우리가 좀더 정확하게 발음하기위해 배우는 것이 발음기호인 것이다. 

이렇게 첫날부터 난 원장 선생님 강의에 완전 홀려 뻐렸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첫 말을 떼고 말을 어느정도 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즉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아기 처럼 언어를 배우려면 수업이 끝나고 스스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그래서 스스로 학원수업 2시간외에 따로 평일은 1시간 , 주말은 2시간씩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학원에서 수업을 녹음한 것을 크게 따라 읽는 시간) 미니멈으로 갖자고 다짐하였고 돌아보면 목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거 같다. (특별한 약속이 없던 주말은 아침부터 저녁때 까지 강의 녹음 내용을 반복해서 따라 읽기도 했다)

선생님도 처음에 발음을 잡는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위에서 말한 중국사학을 전공하는 형 한테도 중국어 학원다닌다고 말 하니 욕심 부리지 말고 첫 4개월 발음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 발음에 더 신경쓰라고 말해주더라 그래서 첫날 배운 아무리 쉬운 단어 문장이라도 소흘히 하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큰 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 난 지금도 첫날 배운 쉬운 단어도 따라 읽으며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 하려고 한다. 난 영어 공부도 쉐도잉이라고 해서 테잎을 반복해서 똑같이 따라 읽으며 발음과 억양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공부를 헀었기에 내겐 아주 익숙한 공부 방식이다.

직장 다니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서 중국어에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는 역시 중국어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였다
그리고 이렇게 1년정도 하면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도 들었다. 
노력을 많이한 덕분에 선생님이 2달 만에 중국어 발음을 잡았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속으로 조금 행복했음 ^^ 

1월부터는 다시 회사일이 바뻐져서 평일반을 다니지 못하고 주말반을 다녀야하는게 너무나도 아쉽지만
(언어는 절대로 몰아서 공부하는게 아니기에)
학원 수업외 미니멈 주10시간 공부목표는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1년뒤 내 중국어가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나 일단 TSC(중국어 말하기 시험) 6급이 목표다. 
(우리 회사는 필기시험인 HSK는 인정 안 해주고 말하기인 TSC만 인정^^)


*아기가 되어 재미있게 중국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강남 차이나로 박귀진원장님 강의를 추천합니다. 
단, 맜있게 먹기 좋게 요리해주는 강의는 절대 아닙니다. 
거칠지만 언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좋은지 깊은 고민과 철학이 녹아있는 강의고
따라 가려면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 강의입니다. 

잘 따라가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강추 !

P.S 블로그 글을 쓰는데 2012년이 되었다 꽤 큰 변화가 예상되는 내 7년차 회사 생활이 시작된다.
2005년 12월 4학년 마지막학기 기말고사를 보고 놀지도 못하고 2 틀뒤 바로 입사를 해야했었는데,
어느덧 7년차가 시작된다. 
즐기자 !

모두 즐거운 2012년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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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16 20: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Favicon of http://reed.tistory.com Reed | 2012/01/16 23:25 | PERMALINK | EDIT/DEL
저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어요~ 열심히 하시길 ㅎㅎ
그레이스 | 2012/01/20 16: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중국사학과가 아니라 동양사학과일거예요^^ 제가 바로 그 동양사학과 출신이거든요. 그 후임병이라는 분 제가 혹 아는 분이 아니실지. 세상 정말 좁네요^^
Favicon of http://reed.tistory.com Reed | 2012/01/20 21:22 | PERMALINK | EDIT/DEL
듣고보니 동양사학과 였던거 같네요ㅎㅎ 그레이스님도 동양사학 전공하셨군요! 정말 그 형이랑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는 ㅎㅎ 세상이 정말 좁아요.. 전 오늘도 경험했죠.. 저희 회사 국내 직원이 10만명정도 되는데도 왤케 좁은지^^ 성실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동기부여가 되는 하루였지요^^ 그럼 구정 연휴 잘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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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2 00:31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칭호얻게된 고가멜라 전투 중 알렉산더 대왕이 사용한 전술이 아주 흥미롭다. 
페르시아군 20만명, 마케도니아 군사 5만명, 당시 알렉산더 대왕 나이는 26세


페르시아 기병대가 자기 군사의 오른쪽을 공력할 것을 예측하고
가운데 보병은 대형을 이루어 전진시킴
알렉산더는 자기 기병대를 데리고 좌측으로 계속 이동 -> 우측으로 간 페르시아군의 시선을 끌면서 진격에 시간을 범.

페르시아 왕은 알렉산더의 기습을 막기위해 역시 기병대를 좌측으로 보내 알렉산더를 따라 움직임. 

-> 점점 멀리 가다보니 페르시아 군대 중간 대열에 간격이 발생

알렉산더 기병대뒤에 숨겨둔 척후병 수백명이 창과, 돌을 던저 페르시아군 기병대 선제 공격하고 중간 대열의 틈으로 돌진하여 페르시아군 대형을 물리치면서 
페르시아군은 정면에 마케도니아 군의 보병과 후방의 기병대의 공격을 받게됨. 
페르시아 왕이 도망가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왕을 쫓기보다 공격을 받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측의 자기 군사를 구하러 감. 

-> 후일 도모를 위해 자기 군사는 꼭 지켜야 했기에 올바른 의사결정 

페르시아 왕을 죽이더라도 자기 군사를 잃으면 그 힘을 유지할 수 없음. 
 

갖은 자원이 없으면 순간순간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싸워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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